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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권력의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
시국선언문 한국예술종합학교 제2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2024. 12. 7.
작업 소개
어느 시대에서나 예술은 늘 세태를 반영하며 성장해왔다. 그것은 불의와 억압에 대한 적극적 행동이었으며 예술이 살아 숨쉬는 방식이었다. “예술은 권력의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늘 그래왔듯이 권력과 예술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예술인이 가진 역할과 태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다색 리본으로 결박된 바위의 인상은 ‘예술은 권력의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는 무거운 문장을 진정성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대개 미적인 요소에 의해 가려지는 예술만의 강인함은 무거운 바위를 팽팽하게 조이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드러나며, 이는 권력에 대한 예술의 일방적 압도가 아닌 속성이 다른 두 요소 사이의 최소한의 균형을 의미한다. 대조적인(단단함과 섬세함) 요소의 병치는 권력과 예술의 공존과 그 안에서의 예술인의 태도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작업자 소개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의 멤버로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공간 설계(기획과 디자인 등)를 공부했고 다양한 물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면에 머무르지 않는 입체적 기법을 활용한 디자인 방법론을 탐구하고 있다. 학부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중앙/단위운영위원회의 위원으로서 불완전하고 합리적이지 못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맞서 왔으며, 문화·예술계의 교육권 수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 왔다. 현재도 일상의실천에서 세태를 반영한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올리브영, 서울독립영화제, 국립극장, 코리아나미술관, KT, LG화학, 환경정의 등 다양한 조직과 협업하고 있다.
시국선언문 전문 보기
시국선언문 전문
시국선언문
2024년 12월 3일 22시 23분경,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민주화 이전의 군부독재 시대 이후 44년 만의 일이다. 뒤이어 23시경, “처단”이라는 표현과 함께 헌법에 명시된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그리하여 이날 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다만 자유와 안전, 그리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국회의사당으로 경찰들이 몰려들어 국회의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을 목격했다. 뒤이어 무장한 계엄군이 헬기와 함께 경내에 진입하여 본청 유리창을 깨고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을 똑똑히 듣고 보았다. 이 일련의 비현실적이고 반인륜적인 장면들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포와 치욕으로 맴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의한 계엄사령부가, 계엄령을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국회의 결의를 막기 위해 국회의 물리적 장악 및 여야 당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 체포를 계획적•조직적으로 명령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약 300명의 계엄군을 통해 무단 점거와 수색이 이루어졌으며, 이 또한 위헌적•위법적 명령과 그 실행에 따른 것이었다. 오전 1시 1분경 국회는 해제 요구안을 결의하였지만 여전히 경찰들은 교대하며 국회 앞을 통제했고 계엄사령부 또한 곧바로 해체되지 않았다. 이로부터 3시간이 넘게 지난 후에야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발표하여 곧 국무회의를 통해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밝혔으며, 국무회의를 통해 해제가 의결되어 약 330분 만에 비상계엄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12월 3일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계엄은 190인의 국회의원과 나라의 영원한 저력인 시민들에 의해 가까스로 저지되었다. 이 계엄은 국가비상상태가 아닐 때 선포되었을뿐더러 국회에 통고되지조차 않은, 불법이자 위헌이며,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반민주적 내란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불편을 끼쳐드렸“다며 명백히 보신용인 담화를 발표하여 군사반란에 대한 올바른 반성과 사과의 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나아가 계엄의 진상이 여전히 의문 속에 가려져 있고 무엇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헌정질서의 파괴가 또 감행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계엄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민들은 단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 어떤 방향으로든 국운을 좌우할 새로운 국면의 시작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은 이 비상사태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저마다의 몫을 다하고자 한다. 즉, 이 시국선언은 우리들의 실천과 그 의지를 위한 밑바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본부는 과거 통제와 탄압을 자행했던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이 있던 자리에서 출발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앞선 세대들의 피땀 어린 역사 위에서 새롭게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청년 예술인으로서, 우리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일동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부러뜨린 퇴행적 폭거 앞에서 두려움을 압도할 정도의 분노를 느낀다. 나아가 우리는 ‘창조적 소수’라는 본교의 설립 이념을 반추하며, 각자의 고유한 사상과 정서를 자유로이 표현하고 불의에 가감 없이 저항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일순간에 앗아간 본 계엄령 일당의 탄압을 한없이 규탄한다.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며, 사회의 양심이다. 예술은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나오는 새로움과 아름다움이며,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한 삶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공존과 연대를 희망하는 삶으로 향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윤석열 대통령이 그 부역자들과 함께 국민의 삶을 공포와 치욕의 도탄으로 몰아넣는 불의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예술인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불의에 침묵하지 않겠다. 우리는 앞선 삶들의 희생을 통해 유구한 역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던 이 나라의 예술이 지닌 가치를 분명히 인식한다. 우리는 역사의 무대 위에서 몸짓과 노래를 이어갈 것이며, 장단과 이미지들을 피워낼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이기 이전에 어떤 종류의 정치도 불가능하게 만든 극악무도한 범죄가 초래한 삶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의 문제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의를 억압하는 모든 시도에 책임을 물을 것이고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예술은 권력의 억압에 굴하지 않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제28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동아리연합회, 인간다울 권리를 위한 학생 자치기구, 음악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무용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영상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연극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미술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전통예술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